단상 2012/05/16 21:52 by flora

1.
syncope에 대한 발표준비 중 tilting test의 기전을 이해하던 참이었다.
딱 6일전 친구 H는 얼마전 이 검사를 받은 경험담을 얘기해줬었다.
발끝부터 발뒤꿈치까지 바닥에 딱 붙이고서는 움직이지도 못하고, 노래도 못듣게 해서 지겨웠는데 어느순간 구역질이 올라오더니 정신을 잃었단다.
14분만의 일이었다고 했다.
얘기를 들을때만 해도 큰 생각없이 너 정말 조심하며 살아야겠다라며 걱정해주었었는데, 발표준비중에 자료사진과 함께 다시 읽는 중에 엉뚱한 쪽으로 생각이 흘러갔다.
시나브로 짓눌러오는 생의 무게에 자꾸만 다리가 무거워져와도 기절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건, 현실이라는 땅위에서 발을 떼어 공상의 세계로 몸짓할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움직이지 못하고 딱 붙어있어야만 한다면 14분은 커녕 14초만에 숨이 턱턱 막혀오지 않을까하는.
다만 그것이 가끔 절망스러운건, 공상 속으로 빠져드는건 유각기동안뿐이라 나에게 날개라도 있지 않는 한 피할 수 없는, 다가올 입각기엔 현실로 돌아와야만 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있어서이다.
그럼에도 자꾸만 망상속으로 빠져드는 것은 아마도 외로움때문일테지.

2.
갑작스럽게 비가 내린다.
핸드폰에 설치해놓은 위젯에서 Rain/Jecheon/20'c라고 써있을때 이 구름한점 없는 날씨에 무슨 비?라며 코웃음친게 불과 한시간전인데, 삼십분전부터 꾸물꾸물하며 으르렁대던 하늘은 빗물을 토해낸다.
이상하게 이런 날이면, 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N이 한잔 하자고 했지만, 내일 있을 공연(이래봐야 1곡이지만)때문에 목관리를 해야 하니깐 술은 안된다며 슬며시 거절했는데, 창문을 때릴듯이 두드리는 빗소리에 결국 맥주를 사들고 왔다.
밖에 나가고싶었던건지, 맥주가 마시고싶었던 건지 아니면 둘다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 이러다 알코홀릭이 되면 어쩌지.
요즘 이상하게 자꾸 술이 마시고 싶다.
어쩔거야 내 뱃살.

3.
어떤 사람에 대해 알고싶다면 친구를 꼭 보라고들 말한다.
사실 한가지로는 조금 부족한듯 싶고 세가지는 보아야 할 것같다.
하나는 누군가 말했던 대로 친구.
또 하나는 부모.
마지막은 그 사람이 현재 살고 있는 방안.
기숙사생활 겸 자취 6년차에 접어들며 드는생각이다.
여러 친구들의 집을 가보아도 그렇고, 멀리 갈 필요 없이 그냥 내집만 보아도 그렇다.
집은 많은 것을 보여주지만, 무엇보다도 그사람의 현재 머릿속을 가장 여실히 보여주지 않는가 싶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집주인의 멘탈은  방안의 분위기에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오늘은 청소를 했다.
묵은 빨래도, 설거지도, 옷정리도 했다.
그리고, 지난 일주일간의 괴롭고 혼란스러웠던 머릿속을 일부 정리했다.

4.
가끔씩 생각한다.
어쩌면 가장 나쁜 사람은 나일지도 모른다고.
남탓으로 돌리고는 있지만, 내스스르로를 변호하기 위한 합리화를 하고는 있지만, 내가 잘못해서 이런 결과로 남을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하는 두려움은 자꾸만 정신을 갉아먹는다.
나 때문에.
그러고보면 나는 끊임없이 괴로워하면서도 한없이 무관심한 사람이다.
그 대상이 남이든 나이든.
싫으나 싫지 않다.
좋으나 좋지 않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했던가.
우습게도, 마음에서 지워버리면 눈에서도 지워진다.
어느샌가 그렇게 놓아버리는 것에 익숙해져버렸다.
그렇게 거울을 보고있으나 보고있지 않는 날들이 늘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 모순때문에 마음속 한켠에 짐들이 계속해서 차곡차곡 쌓여져만 간다.

5.
어느새 비가 그쳤다.
아쉽다.
더 몰아쳤으면 좋겠다.
이대로 쭉 내일아침까지 빗소리를 엄마의 심장소리삼아 잠들수 있게.
보일러를 꺼놓은 방바닥은 차가워 다리를 가지런히 모아 의자위로 올려놓고서 팔로 끌어안고있다.
그래도 자꾸만 발끝이 시려온다.

6.
후회된다.
왜 난 아까 병맥을 산걸까.
아니, 기왕 살꺼면 더 샀어야지 이거밖에 안사온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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